귀하는 로그인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대로 편집하면 귀하의 IP 주소가 편집 기록에 남게 됩니다.스팸 방지 검사입니다. 이것을 입력하지 마세요!=== 왕과 기린 === 각 나라의 왕과 기린들. 왕과 기린을 함께 부를 때 나라의 이름을 붙여 주종{{원|主從}}이라 일컫기도 한다. {{등장인물 |이름 = 나카지마 요코 |이름@ = 나카지마 요코 |이름/일어 = 中嶋 陽子 |이름2 = 츄토 요우시<ref> 中嶋 陽子를 음독으로 읽은 것 </ref> |이름2/일어 = 中嶋 陽子 |CV = [[히사카와 아야]] / 이현선 |설명 = 십이국 중 경동국{{원|慶東国}}을 다스리는 현{{원|現}}여왕. 자는 세키시{{원|赤子}}. 즉위 후의 연호는 적락{{원|赤樂}}. 태과 태생이다. 십이국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소심하고 남의 눈치를 잘 보는, 붉은 머리의 평범한 여고생에 지나지 않았다. 어느 날, 케이키라 불리는 사내에 의해 십이국으로 끌려 들어왔으나 착왕의 방해로 케이키와 떨어져 홀로 교국 안을 방랑하게 된다.<ref>애니메이션에서는 오리지널 캐릭터인 아사노와 스기모토와 함께 행동하게 된다.</ref> 십이국에 들어온 뒤 태각이 벗겨져 머리색이 좀 더 짙은 붉은 색으로 변하고 목소리가 허스키해졌다. 그러나 십이국과 태과에 대한 지식이 전무했던 요코는 그런 외형의 변화가 자신이 요마이기 때문이 아닐까 오해하고 있었고 거기에 교국의 여러 곳을 전전하며 자신을 도와주리라고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하는 일과 수우도의 교란, 거듭된 요마의 습격이 겹쳐지고 말았다. 때문에 라크슌을 만날 무렵에는 극도의 인간불신에 빠져 자신을 순수하게 도와주려는 라크슌마저 믿지 못하나, 함께 안국으로 여행을 하게 되면서 따뜻한 성품의 라크슌에게 영향을 받게 되어 이윽고 적대적인 태도를 버리고 라크슌을 진정한 친구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안국으로 향한 요코는 라크슌의 도움을 받아 자신이 케이키라는 기린의 선택을 받은 경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윽고 행방이 묘연한 경의 신왕을 찾고 있던 연왕과 접촉하였다. 언제나 타인의 눈치만을 살피며 끝내는 인간을 혐오하는 구렁텅이에까지 빠졌던 자신이 경왕에 오를 수 있을 리 없다고 자리를 거절하려 했으나 이대로 저쪽으로 건너갈 경우 요코는 오래 살지 못해 죽고 왕을 찾지 못한 경 역시 교처럼 황폐해질 것이며 요코의 자기 성찰이 왕위에 올랐을 때 큰 도움이 되어 줄 것이라는 연왕과 엔키, 라크슌의 조언에 따라 결심하게 된다. 이윽고 요코는 착왕의 지원을 등에 업은 위왕 죠에이{{원|舒栄}}를 끌어 내리고 끝내 경왕{{원|景王}}으로 등극하게 된다. 왕위에 등극하고 나서도 요코는 관리들의 불신과 마주해야 했다. 최근 3대의 암군이 모두 여왕{{원|女王}}이었던 탓에 요코 역시 비슷할 거라는 편견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기 때문. 십이국의 상식과 제도에 대해 무지한 탓에 정치 전반이 관리들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고 그 와중에 파벌싸움에 휘말려 태부 우이쿄를 잃게 되자 요코는 시정으로 내려가 직접 백성들의 생활을 체험해 보기로 결정한다. 그에 따라 케이키가 소개한 영주 리가의 장로 엔호에게 의탁하여 십이국 전반에 대해 수업을 받게 되었다. 중간 중간에는 직접 다른 주의 생활 상을 보기 위해 여행을 떠나기도 했는데, 특히 가혹한 정치로 악명이 높은 화주에서 아이가 마차에 치여 죽고<ref>아이의 이름은 세이슈. 이 사건을 계기로 스즈와 만나게 된다. </ref> 명곽에서는 책형을 행하는 관리에게 돌을 던졌다는 이유만으로 쫒기는 소녀를 구해주게 되면서<ref>쫒기는 소녀가 바로 쇼우케이. 쇼우케이를 도망치게 해주고 요코는 병사들을 상대했다.</ref> 화주의 문제에 대해 극히 고심하게 된다. 화주후 가호우를 잡아들이라는 명을 내렸음에도 파벌을 이룬 관들이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 상황에서 엔호마저 괴한들에게 잡혀가게 되었고 이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화주 지수향에서 반란을 일으키려고 하는 수은당의 수장 코쇼우와 만나 뜻을 함께 하게 된다. 명곽에서 난을 일으켰던 칸타이 측의 지원에 힘입어 요코는 난을 성공적으로 이끌었으며 이를 계기로 부패했던 관리인 지수향 향장 쇼코우, 화주후 가호우, 전 총재 세이쿄를 축출하는데 성공, 대대적인 관의 개편에 돌입한다. 가장 먼저 발표한 초칙은 '복례를 폐지한다' 는 것. 강요한 예의는 반발심과 굴종을 부를 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에서 세운 것이다. 이 외 대를 구해달라며 찾아온 리사이를 받아들이고 타 12국들과 조력하여 귀환하지 못했던 타이키를 십이국으로 데려오는 데도 앞장서기도 했다. }} {{등장인물 |이름 = 케이키 |이름@ = 케이키 |이름/일어 = 景麒 |이름2 = |이름2/일어 = |CV = [[코야스 타케히토]] / 김승준 |설명 = 십이국 중 경동국의 현 기린. 인간형은 다른 기린들에 비해 색이 옅은 백금발을 지닌 장신의 사내의 모습으로, 자비로운 마음을 지니고 있지만 무뚝뚝하고 말주변이 적어 그 배려심이 잘 드러나지 않는 편이다. 2대의 왕을 섬기고 있다. 첫번째 왕인 여왕{{원|予王}}은 섬세하고 유약한 성미 탓에 정치에 소질이 없었던 암군{{원|暗君}}으로 단 6년 만에 실도하고 말았다. 여왕이 스스로 퇴위를 선택하고 죽으면서 케이키는 간신히 목숨을 건졌고, 이후 태과였던 요코를 일본에서 찾아 두번째 왕으로 옹립하게 된다. 강제로 요코를 십이국으로 데려오는 데는 성공했으나 착왕의 방해로 뿔이 구속되어 기린의 모습을 한 채 위왕 죠에이 측에 가둬질 수 밖에 없었고, 이윽고 요코가 죠에이를 치는데 성공하면서 구출받았다. 요코가 보위에 오른 후에는 정치에 미숙하고 위엄을 세우지 않으려는 요코의 모습에 불만족스러운 태도를 취하나 그녀가 십이국에 대해 배울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최대한 조력을 기울여 주었다. 요코가 주도하여 타이키를 귀환시킬 때는 적극적으로 수색에 임하는 모습을 보였다. 6년 전 타이키가 봉산에 있을 때 케이키는 타이키에게 전변과 절복 등 기린에 대해 이것저것 가르쳐 주었던 적이 있었고 이 때 타이키를 동생처럼 여기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 {{등장인물 |이름 = 죠카크 |이름@ = 죠카크 |이름/일어 = 舒覚 |이름2 = 여왕 |이름2/일어 = 予王 |CV = [[후지타 토시코]] / 배주영 |설명 = 십이국 중 경동국을 다스렸던 전 여왕. 자는 온코{{원|恩幸}}로 시호는 여왕{{원|予王}}이다. 케이키가 섬겼던 첫번째 왕. 재위는 6년이다. 즉위 전에는 평범한 상가 출신의 딸이었으며 왕좌를 기꺼워하지는 않았으나 케이키의 아름다움에 반해 선정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좋게 말하면 섬세하고 나쁘게 말하면 소심하여 매우 수줍어 하는 성품. 즉위 당시에는 정사를 돌보려고 했으나 장기간 실정을 행한 전 왕을 대신하여 나라를 다스려왔다고 자부하던 관료주의의 제관들에게 밀려 국사에 대한 자신감이 없어졌고,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정사를 내팽겨친 채 내궁의 가장 깊숙한 곳에 틀어박히게 되었다. 그 뒤 왕으로서 백성들의 안위를 살피기보다 (여성으로서의) 소소한 행복을 추구하였다고 한다. 선물을 가장한 뇌물을 받고 가호우에게 화주를 내렸다는 언급이 있는 것으로 보아 식견이 밝지는 않았던 모양. 12권 단편인 '비서의 새'에서는 즉위식에서 화살을 맞고 깨어진 도작에서 나오는 슬픈 곡조를 들으며 "무섭다"고 평한 뒤 그 자리를 피해 버렸다고 한다.<ref> 이 사건은 '슬픈 것, 괴로운 것을 보고 싶지 않다' 라는 죠카크의 인품을 반영한 것이었다고 비서는 탄식했다. 이 사건 이후 여왕은 내궁에 틀어박혀 두문불출하게 된다. </ref> 케이키를 사랑하여 항상 그의 눈치를 보았고, 이윽고 왕조 말기에는 궁중에 있는 여관들이 케이키와 마주하는 것마저 질투하여 경 전체에서 여자들을 모두 내쫒으라는 명령을 내림으로서 실도했다. 케이키가 실도의 병에 걸려서 곧 죽을 것임을 알고 케이키만이라도 살리기 위해 스스로 봉산으로 향하여 퇴위하였다. }} ==== 여왕 전의 왕들 ==== {{등장인물 |이름 = 달왕 |이름@ = 달왕 |이름/일어 = 達王 |이름2 = |이름2/일어 = |CV = |설명 = 십이국 중 경동국을 다스렸던, 경왕 요코의 시대로부터 5대 전의 왕으로 시호는 달왕{{원|達王}}이다. 재위 말기에 폭군으로 돌변하여 백성들을 괴롭히기 전에는 안정된 통치 기간을 300년이나 누렸던 명군이었다고 한다. 달왕 사후, 경국은 제대로 된 현군을 얻지 못했고 특히 최근 3대는 재위 기간이 짧고 무능했던 여왕{{원|女王}}들이 이어졌다. 이 때문에 안정된 치세를 누렸던 달왕의 시대를 그리워한다는 의미로 '회달{{원|回達}}' 이라는 말이 경국 곳곳에 퍼져있다. 강대한 요마를 억눌러 수우도{{원|水禺刀}}를 만들었다. }} {{등장인물 |이름 = 이왕 |이름@ = 이왕 |이름/일어 = 悧王 |이름2 = |이름2/일어 = |CV = |설명 = 십이국 중 경동국을 다스렸던, 경왕 요코의 시대로부터 4대 전의 왕으로 시호는 이왕{{원|悧王}}이다. 재위 68년. 달왕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그 뒤로 이어진 세 왕들보다는 나라를 다스리는 데 좀 더 적합했다는 평. 재위 말기에 가까워지자 폭군으로 변하여, 신하의 중상모략을 듣고 처형하는 일이 잦았던 것 뿐만 아니라 스스로 신하들에게 불가능한 과제를 던져주고 이를 완수하지 못하면 불충이라는 이유로 사형시키는 등 의심이 늘고 과도한 충성을 요구했다고 한다. 이렇게 변한데는 태자를 누군가에게 암살당한 것이 계기였다는 설이 있다. }} {{등장인물 |이름 = 박왕 |이름@ = 박왕 |이름/일어 = 薄王 |이름2 = |이름2/일어 = |CV = |설명 = 십이국 중 경동국을 다스렸던, 경왕 요코의 시대로부터 3대 전의 왕으로 시호는 박왕{{원|薄王}}이다. 재위 16년. 나라를 다스리는 데 관심이 전혀 없었고 사치를 즐겼다고 한다. 암군이라 불렸던 3대의 여왕 중 한 사람. }} {{등장인물 |이름 = 비왕 |이름@ = 비왕 |이름/일어 = 比王 |이름2 = |이름2/일어 = |CV = |설명 = 십이국 중 경동국을 다스렸던, 경왕 요코의 시대로부터 2대 전의 왕으로 시호는 비왕{{원|比王}}이다. 재위 23년. 박왕과는 달리 사치를 즐기지는 않았으나, 권력에 맛을 들여 자신의 명령 하나하나에 신하들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이를 놀이 삼았다고 한다. 암군이라 불렸던 3대의 여왕 중 한 사람. }} 편집 요약 가온 위키에서의 모든 기여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라이선스로 배포된다는 점을 유의해 주세요(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가온 위키:저작권 문서를 읽어주세요). 만약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문서를 저장하지 말아 주세요. 또한, 직접 작성했거나 퍼블릭 도메인과 같은 자유 문서에서 가져왔다는 것을 보증해야 합니다. 저작권이 있는 내용을 허가 없이 저장하지 마세요! 취소 편집 도움말 (새 창에서 열림)